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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2018-07-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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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162호.
백제가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에 도읍을 정하였을 때 도성을 지키는 북방의 성으로 132년(개루왕 5)에 축성(築城)되었다. 이때 백제의 주군력(主軍力)이 이 성에서 고구려의 남진을 막았으며, 그뒤 근초고왕의 북진정책에 따라 북벌군의 중심요새가 되었다.
1232년 고려 고종 때는 이곳에서 몽골군과의 격전이 있었고, 현종은 거란의 침입을 피하여 이 성에 태조의 재궁(梓宮)을 옮긴 일도 있는데 이때 성의 중축(重築)이 있었고, 1387년 우왕 때는 개축공사가 있었다.
조선시대에 와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침을 자주 당하자 도성 외곽성의 축성론이 대두하여, 1711년(숙종 37) 왕명으로 대대적인 축성공사를 시작하여 석성(石城) 7,620보(步)가 완성되었다.
성의 규모를 보면 대서문(大西門) ·동북문(東北門) ·북문 등 13개의 성문과, 자단봉(紫丹峰) 위에 동장대(東將臺) ·나한봉(羅漢峰), 동북에 남장대(南將臺) ·중성문(中城門), 서북에 북장대(北將臺)가 있었고, 1712년에 건립한 130칸의 행궁(行宮)과 140칸의 군창(軍倉)이 있었다. 성내 중흥사(重興寺)는 승군(僧軍)을 배치한 136칸의 대찰이었으며 12개의 사찰이 있었다.
지금은 성곽의 여장(女墻:성위에 낮게 쌓은 담)은 무너졌으나, 대서문이 남아 있으며, 성체(城體)는 완전히 보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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