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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2018-07-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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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0월 25일 사적 제362호로 지정되었다. 성종의 원자인 연산군은 1506년 9월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폐왕이 되어 연산군으로 강봉되고 강화 교동(喬桐)에 유배되었다가, 1506년 11월 31세에 병사하였다. 부인 신씨는 영의정 신승선(愼承善)의 딸로서, 연산군의 폐왕과 함께 폐비가 되어 연산군이 죽은 뒤 묘를 강화에서 양주군 해동면 원당리(현 위치)로 이장하기를 청하여, 1513년 2월 왕자군(王子君)의 예로 이장하고 양주군 관원으로 하여금 치제하게 하였다.
묘의 시설은 대군으로 예우하여 봉분·곡장(曲墻)·혼유석(魂遊石)·장명등(長明燈)·향로석(香爐石)·재실(齋室) 등이 갖췄으나, 병풍석(屛風石)·석양(石羊)·석마(石馬)·사초지(莎草地)·문인석(文人石) 등은 세우지 않았다. 기록은 연산군의 묘비 전면에 ‘燕山君之墓’, 뒷면에는 ‘正德八年二月二十日葬’이라 새겨져 있다. 부인 신씨의 묘비는 전면에 ‘居昌愼氏之墓’, 뒷면에 ‘六月二十六日葬’이라 새겨져 있고, 연도 부분은 마멸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