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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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2018-07-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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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7월 10일 경기도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되었다. 보광사에서 소유하고 있다. 관악산 최고봉인 연주봉에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절벽이 솟아 있는데,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약간의 석축을 쌓아 올린 곳에 연주대가 있다. 신라시대 677년(문무왕 17)에 의상(義湘)이 관악사(冠岳寺:지금의 연주암) 창건과 함께 세워 의상대(義湘臺)라 이름 붙이고, 이곳에서 좌선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후 조선 1392년(태조 1)에 중건하였다.
연주대란 이름은 조선 초에 개칭한 것으로, 태조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한 뒤 고려의 충신인 강득룡(康得龍)·서견(徐甄)·남을진(南乙珍) 등의 유신(遺臣)들이 이곳에서 멀리 송경(松京:개경) 쪽을 바라보며 두문동(杜門洞)에서 순국한 72인의 충신열사와 망국 고려를 연모하며 통탄하였다 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라고 전한다.
또한 다음과 같은 전설도 전한다. 태종이 셋째 왕자 충녕대군을 태자로 책봉하려 하자 이를 눈치챈 첫째 양녕대군과 둘째 효령대군이 왕궁을 빠져 나와 발길 닿는 대로 방랑의 길을 떠나 이산 저산을 헤매다가 며칠 만에 문득 발을 멈춘 곳이 관악산이었다.
그들은 관악사에 들어가 입산수도하면서 왕좌에 대한 집요한 미련과 동경하는 마음을 누를 길 없어 관악사를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그러나 왕좌에 대한 미련으로 발길은 언제나 왕궁이 바라다보이는 산정으로 향하였으며, 이 연주대에 올라 왕궁을 바라보며 왕좌를 그리워하였다. 그리하여 관악사의 이름도 어느덧 연주암으로 바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