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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전통시장은 1926년에 개설 되었으며,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예부터 광천의 관문인 옹암포(饔巖浦) 또는 옹암항은 서해안 섬들의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보령시 원산도(元山島)와 안면도를 비롯한 서해안 섬사람들이 여러 가지 해산물과 어패류를 가지고 보령시의 오천항을 거쳐 옹암포에 들어와 광천장에서 그것들을 판 뒤에 생필품으로 바꿔 가지고 저녁 무렵에 다시 돌아갔으므로 광천장이 서는 4일과 9일에는 150여 척의 장배가 드나들 정도로 크게 번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산사태로 흘러들어온 흙 때문에 선창이 매몰되고 내륙교통이 발달하면서 침체 일로를 걷다가 현재 광천토굴새우젓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광천새우젓은 옹암포 토굴에서 익힌 새우젓을 말하며 전국 새우젓 생산량의 약 60퍼센트를 차지한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광천새우젓이 그처럼 유명해진 것은 이곳이 바다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새우젓을 저장하기에 알맞으며, 이곳 사람들이 간을 맞추는 솜씨가 좋아 맛과 빛깔이 좋기 때문입니다. 옹암포 토굴은 섭씨 15도에서 17도의 온도를 유지하므로 젓갈의 맛이 은근하면서도 깊이 들어 다른 지방에서 흉내를 낼 수가 없습니다. 광천 토굴새우젓 맛보러 들러보세요.
원주중앙미로예술시장은 50년대 초 생성되어 중부 영서권을 아우르는 대표 시장이었습니다. 1970년 1월 1일 현재의 콘크리트 슬라브 2층의 모습으로 준공되었습니다. 고속도로의 개통과 대형마트의 출현으로 상권이 위축되던 전통시장이었지만 현재 중앙시장은 다양한 문화 예술을 토대로 새롭게 발전하고 있는 중 입니다. 또한, 레지던시 사업을 통해 작가들이 시장2층으로 들어와 시장을 밝게 꾸며주고 다양한 청년 사업가들이 수공예, 홈쿠킹 공방을 열어 새로운 형태의 문화 예술 시장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원주의 전통이 있는 시장으로서 시장 1층에서는 전, 분식, 올챙이 국수, 소고기 거리 등 다양한 맛거리를 즐길 수 있으며, 과거 주단포목 도매시장이었던 만큼 여러 주단집들과 생필품, 잡화, 수선 집 등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시장 2층으로 올라오시면 과거를 간직한 찻집, 보리밥집, 칼국수 집 등의 맛집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는 수공예, 홈쿠킹 공방 등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전시 및 문화 예술의 거리도 볼 수 있습니다. 매월 2째주 토, 일에 오시면 원주 중앙시장 2층에서 열리는 미로예술시장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프리마켓, 다양한 공연, 시민들을 위한 이벤트, 아이들을 위한 체험이 진행됩니다.
1, 6, 11, 16, 21, 26, 31일 금촌 오일장 장 서는 일자입니다 금촌 통일시장은 통일 길목 파주에 위치한 경기 북부 최고의 시장으로 육성 발전되어가고 있는 시장입니다. 우리 시장은 재래시장으로 구성된 전통시장과 골목형 전통시장으로 구성된 명동로 시장, 다양한 세대간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문화로 시장, 매월 1월과 6일에 열리는 전통 오일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지역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싱싱한 현지 특산물과 토산품, 문화상품등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임진강에서 막 건져 올려 살아있는 듯 펄떡이는 어장 코너와 인근의 평야에서 키워낸 쌀과 잡곡들, 푸른 채소들이 시장 칸칸이 자리잡고 있는 금촌통일시장에서 금촌 주민들과 함께 지역의 정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주변 관광지로는 임진각과 제 3땅굴, 영화JSA로 유명한 판문점과 문화예술공간인 헤이리마을, 북한을 가장 가깝게 내려다볼 수 있는 오두산 통일 전망대와세계문화 유산인 삼릉등 다양한 곳이 있어 수도권 인근의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금촌통일시장은.... 물건을 파는 장(場)터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정을 나누는 정(情)터이기도 합니다. 금촌통일시장을 많이 사랑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조선 중기부터 형성된 시장으로, 서문시장의 옛 이름은 대구장이다. 대구장은 조선시대에 평양장, 강경장과 함께 전국 3대 장터 중 한 곳이었다. 원래 대구읍성 북문 밖에 자리 잡은 소규모 장이었다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물자 조달의 필요성이 증대하자 장이 크게 발달하였다. 1601년(선조 34) 경상감영이 대구에 설치되어 대구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고, 1669년(현종 10) 낙동강을 경계로 좌·우도로 분리되어 있던 경상도가 통합되어 하나의 행정권을 형성함으로써 대구의 경제적 위치도 크게 부상되었다. 이 때 대구장의 거래량도 급격하게 늘어 북문 밖에서 현재의 동산파출소 자리로 장을 옮겼다. 당시 2일·7일이 장날이었던 도매업 중심의 대구장과 4일·9일에 개장된 대구신장(동문시장)은 도내 각지의 5일장을 연결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1770년 대구에는 9개의 5일장이 있었으며, 인근 20리에 있었던 칠곡읍내장과 함께 대구읍내장(서문시장)을 중심으로 완전한 시장망이 형성되었다. 1920년대에 대구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서남쪽에 있던 천황당지를 매립하여 다시 장을 옮긴 것이 오늘날의 서문시장 위치이며, 1922년 공설시장 개설 허가를 받았고, 대구읍성 서쪽에 자리하여 서문시장이라 불리게 되었다. 현재 서문시장의 대지 면적은 2만 7,062㎡, 건물 총면적은 6만 4,902㎡이다. 1지구·2지구·4지구·5지구·동산상가·건해산물상가 등 6개 지구로 구성되고, 약 4,00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으며 상인 수는 약 2만여 명이다. 주거래 품목은 주단·포목 등 섬유 관련 품목으로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원단 시장이다. 그 밖에 한복·액세서리·이불·의류·그릇·청과·건어물·해산물 등 다양한 상품이 거래된다. 2005년 12월 29일 화재로 인해 6개 지구 중 가장 큰 2개 지구(지하 1층·지상3층, 건물총면적 1만 9,992㎡ 규모의 상가)가 전소되었는데, 2008년 현재까지 재건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제천중앙시장은 조선후기부터 행상들이 집결하던 제천 근방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통시장으로서 역전시장과 함께 충청북도제천 지역의 상거래를 주도해 온 역사가 있는 시장입니다. 우리 시장은 깨끗하고, 친절하며, 품질 좋고 저렴한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상인들이 한 마음으로 뭉쳐 제천과 중부권 최고의 시장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상인의식 개혁과 서비스 정신으로 시장이 새롭게 변화할 수 있도록 거듭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장을 방문해 주신 고객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고객님들의 많은 애용을 바랍니다. 항상 저의 제천중앙시장에 변함없는 관심과 애정으로 방문해주시는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부산진시장은 혼수와 원단특화 전문시장으로 아주 유명한 곳으로써, 서울 동대문시장, 대구 서문시장과 함께 전국 3대 시장의 하나로 불리고 있습니다. 백화점 못지 않은 많은 물품과 방대한 종류의 상품들을 판매하는 1350여 개의 점포들이 입점해 있습니다. 한복, 원단, 이불, 그릇 등 혼수용품과 의류, 악세사리 뿐 아니라 식육점과 분식점, 해산물까지 수용하고 있으며 그 밖에도 많은 품목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특히 혼수, 원단용품 점포가 600여 개에 달하여 경남은 물론 전국에서 도매상들이 물건을 사기 위해 찾을 정도 특화된 시장입니다. 100여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부산진시장' 부산진시장은 1913년 9월 40평과 60평짜리 2동의 함석상가를 지어 매일 열리는 상설시장이 됐으며, 1930년 10월에 대지 2000평, 건평 200평 규모의 시장을 건립해 시장번영회를 발족한 뒤 다시 지난 58년 2월 목조건물을 단층에서 2층으로 증축해 연건평 4000평을 설립해 운영되었다. 1968년 3월에는 현재의 부산진시장 건물을 착공해 이듬해 총 8000평의 현대화 철골 코크리트 건물로 지하2층, 지상 3층으로 완공하였다. “저희 부산진시장은 현대적 전통시장의 대표적 사례로써 지역사회 발전과 재래시장 활성화에 혼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람 많은 동대문 일대. 평일이나 주말이나 할 것 없이 관광객, 또는 인근 주민들로 북적북적 거리는데요. 이런 사람 많은 동대문 일대에서 골목골목 숨어있는,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볼거리를 발굴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어요. 이 중 봉제골목으로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한 창신동의 창신시장입니다. 지하철 동대문 역 3번 출구에서 우리은행 옆 골목으로 들어서면 눈에 보이는 것이 바로 창신시장입니다. 버스로는 동대문 버스정류장이 있어서 많은 버스가 시장을 지나쳐갑니다. 시장 인근에는 동대문 성곽공원, 동대문 완구거리 등 유명한 관광지들이 있었지만, 정말 창신동 주민들 가까이에는 바로 창신시장이 있답니다. 시장은 골목에 작게 위치해 있었습니다. 작은 골목 안에 오밀조밀 점포들이 있어요. 마트, 먹거리, 베이커리, 야채가게, 과일가게 등 없는 게 없는 시장입니다. 좁은 골목에서 사람들은 장을 보고,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집니다. 인근에 외국인들이 거주하다보니 중국 식품을 파는 것이 특징입니다. 창신시장이 또 나만의 맛집들이 유명합니다. 볼거리 살거리 먹을거리가 풍부한 창신동 시장으로 놀러오세요. 새로운 것과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그리고 새로운 맛도 함께라면, 무한한 이야기가 숨어있는 굽이굽이 예술시장 창신시장을 주목해보세요!
남성시장은 과거 사당동이 남성동(사당동의 과거명칭)이었을 당시 남성동에 있는 시장이라는 의미로 남성동이라는 동명은 방배동 남쪽 경계지역에 성터가 있으므로 성 남쪽에 있던 마을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1965년 이전 원주민들만 살았던 남성동은 1966년 청계천 철거민이 대거 이주하면서 마을이 커지게 되었고 이에 시장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 재개발로 인해 시장이 철거되었고, 옛시장 밑 골목으로 상인들이 이동함에 따라 지금의 남성시장 위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루 평균 1만 5000여 명 이상이 이용하는 남성시장은 현재까지 50년 이상 지역을대표하는 재래시장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2014년에는 전통시장으로 인정받으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도약하고자 합니다. 고객의 믿음에 부응하며 모두가 함께하는 훌륭한 시장으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앞으로 계속 진행될 변화의 한 걸음 한 걸음 전폭적인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리며 남성 사계시장 상인회원님들의 사업 번창과 가정의 평안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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